윌라와 밀리의서재 소송, 법원 "TTS도 저작권 침해 요소 될 수 있다"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는' 분들 많으시죠. 그 중에서도 그냥 TTS(Text To Speech) 기능으로 인공지능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듣는 경우도 많으실 겁니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윌라와 밀리의서재인데, 두 회사간의 소송전의 2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책의 TTS 기능 역시 저작권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임의로 제공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건데요. 법원은 단순 편의기능이 아니라 저작권법상 복제-전송에 해당하는 중요한 행위라고 봤습니다. 플랫폼 사업자가 책의 내용을 음성으로 변환해서 제공하는 건 단순히 '읽어주는' 게 아니라, 책의 내용을 복제하고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반드시 권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그동안은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기능이고, 책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인 기능이라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이번 판결로 오디오북 산업 전반에서 저작권자 권리 보호, 협의와 절차 및 권리관계를 엄밀하게 가져가야 할 명분이 생긴 판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오디오 파일'보다 중요한 '소리로 듣는지' 여부

이번 판결은 윌라가 밀리의서재에 제기한 배타적발행권 침해금지 소송의 2심 결과가 나온 건데요. 서울고등법원은 1심 결과를 뒤집고 오디오북 등 오디오콘텐츠의 배타적발행권을 가진 윌라의 콘텐츠를 밀리의서재가 TTS 기능을 통해 이용자에게 제공한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밀리의서재는 TTS 기능은 '책을 읽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복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TTS 기능을 별도의 콘텐츠로 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귀로 듣는' 오디오북이 떠오르는 가운데 윌라는 성우 낭독을 바탕으로 가장 많은 독점 오디오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반면 밀리의서재는 압도적으로 많은 물량으로 승부하고, TTS 기능을 이용해 인공지능이 '읽어주는' 콘텐츠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밀리의서재에서 TTS를 서비스하는 작품들 중 일부를 윌라가 '오디오콘텐츠'의 배타적 발행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1심에서는 윌라가 판정승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심에서는 TTS 기능 제공 금지 등 주요 사안에서 모두 윌라가 승리하면서 말 그대로 완승을 거뒀습니다. 1심에서는 '오디오북'이 만들어질 경우 권리가 침해됐다고 봤지만, 2심은 TTS 기능 역시 권리침해로 판단한 건데요. 소송의 쟁점은 TTS 기능을 통해 도서 콘텐츠를 음성으로 제공하는 것이 오디오콘텐츠의 배타적발행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그 행위의 주체가 TTS를 제공한 플랫폼인지 여부였습니다.

밀리의서재는 TTS를 두고 "직접 오디오콘텐츠를 복제, 전송하지는 않는다"며 "TTS기능 자체가 윌라의 오디오콘텐츠가 가진 배타적발행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작권법에서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제 30조)나 일시적 복제(제 35조)의 경우 배타적발행권 침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니까, 밀리에서는 TTS 서비스를 '이용자'가 선택해서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고, 녹음되어 반복 재생되지 않는 '일시적' 행위라고 본 겁니다.

그러나 법원은 별도의 오디오파일이 만들어져 저장, 유통되지 않더라도 TTS 버튼을 선택하는 것 만으로 재생되기 때문에 복제, 전송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이에따라 저작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별도의 파일이 생성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텍스트가 음성으로 변환되어 '오디오'의 형태로 이용자에게 제공된 행위 자체가 복제 및 전송에 해당된다고 본 겁니다.

* 이용자의 선택은 그저 기술을 이용한 것일 뿐, 책임은 플랫폼에 있다

그리고 행위의 주체 역시 이용자가 아니라 밀리의서재로 보았는데, TTS 기능을 실행하면 일시적으로 '복제물'인 wav 파일이 생성되고, TTS를 사용할지 여부를 제외하고는 이용자에게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 점, 프로그램 운영과 개발, 제휴, 기능과 실행 모두 밀리의서재 앱이 관할한다는 점이 밀리의서재를 주체로 본 이유입니다. 기존 해석에서는 주체는 이용자로, 플랫폼은 기능만 제공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를 뒤집은 겁니다.

사실 이 쪽이 우리의 상식에 맞습니다. 기술이 있으니 '이용'한 것이지, 그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은 플랫폼이 제공한 거니까요. 재판부는 "특정 도서의 전자책 파일이 wav로 '복제' 되는 과정에서 밀리의서재 이용자들의 역할은 복제 대상이 되는 도서를 지정하고, 밀리의서재가 제공하는 앱 내 'TTS' 버튼을 누르는 것 말고는 없다"며 "밀리의서재가 도서의 오디오 복제행위를 관리, 지배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AI와 TTS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범위, 권리자의 배타적 권리와 관련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간 '오디오 파일'의 유무가 저작권 침해를 가르는 주요 판단 근거로 여겨졌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콘텐츠가 제공되는지가 핵심 판단 기준이 된 겁니다. 즉, '오디오 콘텐츠'는 '듣는' 콘텐츠이므로 글로 적힌 콘텐츠를 '듣게' 해 준다면 배타적 발행권 침해라고 볼 소지가 있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산업에서 계약이 지켜질 명분이 더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계약을 해 권리를 받아왔는데 '비슷한 형태로' 제공되는 콘텐츠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배타적' 발행권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편으론 이런 기술이 단순히 '이용자 편의를 위해 제공된다'는 이유로 계약을 침해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즉 계약, 협업, 권리자 수익 배분 등 오디오북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텍스트 편집자가 오디오북을 맡는 등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 수익이 제대로 발생할 수 있는 콘텐츠로 나아갈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출판사나 플랫폼 입장에선 '포괄적으로' 모든 권리를 묶어 계약해온 관행을 수정해야 할 겁니다. 텍스트 원천 콘텐츠가 있다면, 오디오북 역시 별도의 콘텐츠로 볼 수 있고, 심지어 TTS 역시 배타적 발행권이 인정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밀리의서재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상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TTS를 배리어프리 등 이용자 접근편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도 분명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 보호와 배리어프리 사이에서 보다 확실한 판단을 받기 위해 상고하고 대법원에서 법리적 해석의 오류가 없는지 다퉈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 인공지능 생성물과 연결될 가능성 있을까

한편, 인공지능에 의해서 '생성된' TTS가 오디오북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저작물을 바탕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의 저작권 침해 여부도 다퉈볼 수 있을 가능성도 논의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창작물은 배타적 발행권을 부여받거나, 저작권자가 허락한 곳에만 유통되도록 하고 있는데요. 인공지능이 이를 바탕으로 학습해 '보는' 이미지 콘텐츠를 제작했다면, 그리고 저작권자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물론, 이번 판결에서는 '인공지능의 학습'을 다룬건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물을 제공하는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면, 배타적 발행권 등 계약의 요소가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 창작물의 이용 가이드 수준을 넘어 저작권위원회가 발표한 저작권 등록 매뉴얼처럼 실질적인 효력이 있는 제도, 그리고 명확한 정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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