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 26가을호 제작현장: 떠야 해!
‘뿅’은 뾰로롱의 자체 콘텐츠 중 하나로, 이름처럼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을 담는다. 앞으로, ‘뿅’에는 주 1회 주기로, 멤버들의 생동감 있는 문장들로 뾰로롱을 만드는 과정이나 관련 후기, 일지 등이 업로드될 예정이다. ‘뿅’의 네 번째 글은 편집장의 26가을호 제작현장 편으로, 편집장이 뾰로롱의 세 번째 책 『뾰로롱 26가을호 만듦』을 내며 겪었던 일화와 경험에 기반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한다.
창간호 이후로 뾰로롱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단적인 예시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참여 작가들이 행사 ‘하고싶은 만화전’에서 진행하는 사전 인터뷰에서, ‘뾰로롱’을 사고 싶은 책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된다.
떠야 해!
인디 밴드 양치기소년단의 인기곡 중 ‘떠야 해’라는 노래가 있다. 펑키한 리듬에 유치하지만, 직설적인 가사가 매력적인 곡이다. 그 가사 중 ‘조금만 기다려줘 너로 만드는 이 노래로 떠야 해.’라는 가사가 있다. 그 이후에는 ‘좋은 차를 사고 널 옆에 앉혀야 해. 불러야 해. 이런 노래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써야 해.’라는 부분이 나온다. 독립만화 작가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랄까?
왜 떠야 해?
우리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현재 독립만화 현장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과거의 독립만화라고 할 수 있는 ‘계보’ 정리들도 간절하다. 가깝게는 현재 많이 나오고 있는 만화 작가들의 앤솔로지부터 쾅, 새만화책, 우주사우나, Sal북 등 어쩌면 더 과거로 가서 민주화 운동 세대의 만화까지… 이걸 왜 정리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단순한 재미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록’에 대한 열망이 있다. 연예인의 시시껄렁한 농담 한마디까지 나무위키에 적히는 디지털 아카이빙 시대에서, 작가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포이자 엄청난 손실이다.
꿈틀꿈틀 그리고 마주하기
이번 26가을호의 인터뷰는 다른 때보다 특별했다. 왜냐하면 INDEX 작가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만화가로서 150페이지가 넘는 만화를 작업중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INDEX 분리불안증이 있는 것 같지만, 저번 호까지만 해도 공주까지 같이 내려가서 인터뷰했던 사람이 없으니 헛헛하기도 했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뷰는 보통 기획안-컨택-본 인터뷰 진행-교정 교열 순으로 이어진다. 멤버 한 명이 없으니 인터뷰하는데 좀 더 긴장하기는 했지만, 모든 인터뷰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중 한 가지 인터뷰가 인상 깊게 기억나 적어보려 한다.
이번에 만듦을 주제로 하므로 여러 명의 만화 작가들이 함께하는 앤솔로지를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여러 앤솔로지를 찾아보고, 단순히 북페어 활동뿐만 아니라 전시 등 독립만화 팀으로서 할 수 있는 넓은 범위의 활동을 하는 ‘디룡이 코믹스’를 인터뷰했다. 막상 인터뷰할 때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순히 ‘디룡이 코믹스가 많은 활동을 했다.’가 아니었다.
나에게 좀 더 감동을 주고 영향을 준 부분은 팀으로서 단단하게 서로에게 유대감을 갖는 부분과, 만화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엿볼 수 있던 점이다. 마지막 부분에 꽃과 알로하 작가님이 말씀하신 문장을 인용한다.
‘최고로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디룡이 코믹스 활동이) 내 삶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내 버팀목이 된 거구나. 그래서 다른 분들도 이게 내 삶의 일부가 이미 되었고, 우리 계속하겠구나. 계속 만화를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친 건가
이번 호의 디자인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딱 4글자로 줄일 수 있다. 미친 건가. 왜냐하면 나는 비교적 책 디자인을 일찍 끝냈고, 일찍 놀 수 있었다. 그 당시 계획은 최대한 인터뷰 내용을 많이 담기 위해서 인터뷰 관련 사진들을 따로 포스터로 만들고, 글만 잡지에 담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팀원 간의 회의를 통해 예산을 맞추기 위해 글 내용을 줄이고 사진을 넣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다시 했다. 단순히 다시 했다기보다는, 내가 내 자신을 즙 짜듯이 탈탈- 짜 넣었다는 것에 가깝다. 사람이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나 힘듦을 느끼면, 초연해짐을 느꼈다. 나는 그저 할 뿐이었다. 아주 아주 다행히도, 나는 창간호와 26여름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복병이 있었다. 인쇄. 인쇄소는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에 가까웠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인쇄소마다 성격이 매우 다른데, 우리가 이용하는 인쇄소는 비교적 가성비 있는 대형 인쇄소이다. 지난번에는 인쇄 담당자가 수정을 요구하지 않아서 표지에 바코드가 이상하게 들어가는 대참사가 있었다. 따라서 100개의 바코드 스티커를 붙였던 나는 머리끝 정수리까지 긴장하고 인쇄 파일을 만들었다.
이번 담당자는 2명이었는데, 그들은 지독하게 꼼꼼했다. 꼼꼼한 편이 인쇄 결과물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디자이너(=편집장)는 3일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긴장해야 했다. 우리가 하드커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표지의 배치가 중요한데, 인쇄 들어가기 직전에 이를 수정해야 했다. 결과물은 잘 나왔고, 행사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이 될 것임을 감히 짐작한다.
한 책을 온 동네가 키운다
한 아이를 온 동네가 키운다고 했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비슷하게 한 책은 온 사람들이 키우는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만화를 좋아하는지, 그것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지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심지어 나에게 가까운 어떤 사람은, 왜 네 돈 써서 자선사업을 하냐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게, 왜 나는 이러고 있을까.
몇 마디에 굴복하기에는, 정신없이 우리 팀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삶에 뛰어들면서 한 번도 누군가가 내가 내린 결정이 맞다고 지지해 준 경험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항상 나는 내 선택에 불안해했고, 한 번도 단언해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뾰로롱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주었다. 누군가는 뾰로롱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를 망치고 있다고 했다. “마구니(마귀)가 낀 거야…! 결국 널 책임져 주지 않아…”라고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떠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0살까지는 하기로 했다. 12월에는 뾰로롱 팀원들과 모여서 투자처를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떻게 뜰 지 모르겠지만 뜰 것이다. 12월에는 뾰로롱을 후원해 줄 기업을 만나서 멤버들에게 정당한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화로 부여하고 싶고, 나 또한 인쇄 일에 가까워질수록 통장 잔액을 확인하지 않고 싶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밈이나 유행어들도 이야기에서 파생한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야기가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한다. 사명감이라기보다, 한 명의 작가로서 필요성에 가깝다. 뾰로롱이 뜨기 위해서 나홀로 낼 수 없었던 각종 용기를 낼 것이다.
일단 뾰로롱은 뜨기 위해서 행사를 나간다.
이번 예상 판매 부수를 넘기면 처음으로 우리는 흑자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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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로롱은 떠야 해!







